푸른숲·강 어우러진 진남교 ‘한 폭의 그림’
도자기 명장 백산 선생 만나 장인숨결 실감
식당에 갔는데 입이 깔깔하다. 하지만 걷기 위해선 먹어야지 별 수가 있나. 된장국을 주문했다. 입맛이 없을 때, 물이 바뀌어 배탈이 걱정될 때, 특별한 메뉴가 눈에 띄지 않을 때 가장 무난한 음식이 된장국이다. 식당 벽에 “커피는 셀프입니다”는 글이 붙어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 붙어있는 글귀다. 아내는 커피나 한 잔 하겠다고 ‘셀프’로 가져온다. 요즈음 “커피를 영어로 뭐라고 하지?” 하고 물으면 “셀프”하고 답변한다는 우스갯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국토종단을 계획할 때 많은 분들이 만류했었다. “그 먼 길을 걸어간다니 말이 되느냐” “한국의 길이 좀 위험하냐”는 등.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어느새 보름이 지났고, 목표의 절반이 가까워 온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라는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길을 재촉한다.
서벌면, 공검면을 지난다. 평야지대다. 상주는 삼백(三白) 뿐 아니라 배도 유명한 모양이다. ‘상주 배 고장’이라는 큰 간판이 서있다. ‘경상도’라는 이름이 경주의 ‘경’자와 상주의 ‘상’자로 비롯된 것이라며 식당주인이 자랑을 했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저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물산의 힘일 터이다.
성지여중고 사인이 보였다. 북 상주 아이시를 지나 지도를 보니, 충주행 95번 국도를 따라 가는 게 가까워 보인다. 고속도로를 따라 걷는데 귀가 멍할 만큼 시끄럽고 위험하다. 4킬로쯤 걷다가 점촌휴게소에서 내렸다. 도로공사 여직원이 깜짝 놀라며 국도를 걷는 것은 위법이라고 말해줬다. 하마터면 문제가 될 뻔했다. 점촌을 거쳐 지방도로를 따라 문경읍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지름길로 가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돌아가게 되었다.
불정역 부근을 지나는데 썰렁하게 보이는 학교 건물이 보였다. 탄광이 한창일 때 광업소 아이들을 위해 지었던 학교라고 한다. 이제 학교는 건물만 남고, 탄을 나르던 철로도 인근 진남교를 오가는 관광열차가 대신했다. 철길이 한가하게 누워 있다. 옛 시절이 그리운가보다.
진남교에 도착해 차가운 아이스케익을 사는데, 벚꽃 필 때 오시지 그랬냐며 주인이 아쉬워한다. ‘경북 제일경치<고모성 진남 휴게소>’ 빛바랜 사진이 휴게소 안에 걸려 있다. 밖에 나와 다시 둘러보니, 꽃이 피고 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절경이다.
꽃. 올해는 원 없이 꽃길을 걸었다. 3월 초, 종단을 시작할 무렵부터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산수유, 복숭아, 싸리꽃 등. 막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함께 올라오는 중이다.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저 많은 꽃들이 모두 나를 반겨 피어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산천이 달라 보였다.
산을 휘감아 강이 흐른다. 강과 산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지만, 강둑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 비로소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저 강산을 바라보면서 북녘 산하를 떠 올린다. 그 땅에 사는 형제들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반백년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한 쪽은 푸름이 출렁이는 울창한 산이 되고, 다른 한 쪽은 바라만 보아도 배고픈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은 부모를 닮기보다 그 시대를 더 많이 닮는다고 하였지만, 사람은 먼저 그 산천을 닮는다고 했다. 메마른 산천을 닮아 아이들이 행여 마음조차 가난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애당초 하나였듯이,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할 우리의 핏줄이 아니던가.
문경읍이 가까워온다. ‘문경 전통찻사발축제’를 선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망뎅이 가마가 이 부근에 있고, 자기를 만드는 곳도 서른이 넘는단다. 도자기 명장, 무형문화제 제도를 만들어 도자기를 위해 살아온 분들을 우대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났다. 열여덟 살부터 51년째 도자기 일을 해 오고 있는 분으로 내년이면 일흔 살이다. 도공 7대를 이어왔다고 했다. 도공 7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고요하다. 자그마한 마을이 저녁안개에 쌓인다.
발길을 재촉한 탓에 내일 문경새재를 넘을 수 있게 됐다.
<정찬열>




종합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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