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뉴욕타임스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다. 유럽의 유명한 지휘자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음악활동과 비행업무를 병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2024년 12월, 산타 체칠리아 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단원들을 모두 태우고 에어프랑스를 직접 조종하여 로마에서 파리까지 날아가 유럽 투어를 시작했다.이 특이한 비행에 동행한 NYT 기자는 조종석에서 연료수치와 기상패턴 분석, 승객과 화물수량 집계 등 엄격한 비행업무를 수행하던 사람이 착륙 몇 시간 만에 무대에 올라 리허설과 공연에 몰입하는 마에스트로로 변신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이 재미있는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다니엘 하딩(50)이라는 별난 지휘자가 LA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감독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지난 26일, LA 필하모닉은 오케스트라의 제12대 음악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둘러 (자신이 조종하지 않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하딩이 LA에 첫
여러분이 나에 대해 모를 수도 있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키가 큰 여성이다. 맨발로 6피트 2인치다. 웃음소리는 크고, 솔직히 말해 귀를 찢을 듯 날카롭다. 그리고 나는 가구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2026년 커먼웰스 단편소설상 지역 부문 수상작 다섯 편 가운데 하나인 ‘숲속의 뱀(The Serpent in the Grove)’의 주인공 마샤 이모에게 강하게 공감했다.작품은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가구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 특유의 덩치였고, 그녀의 웃음은 들보 위 먼지를 털어낼 만큼 우렁찼으며, 아이를 난간 끝에서 달래 내려오게 할 정도로 부드러워질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물론 농담이다. 누구도 이런 바로크풍의 난삽한 문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작가가 수많은 소설과 아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섭렵했지만, 정작 현실 세계의 인간들과는 한 번도 교류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작가 이름은
이제 6월의 시작이다. 자연과 역사의 이치는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봄의 태동을 지나 맞이한 여름은 생명이 가장 격렬하게 성장하는 시기다.인간의 삶도, 사회 조직도, 국가도 이 탄생과 성장, 쇠퇴와 몰락의 궤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역사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역사의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파악하고 준비해야만, 존재의 영속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역사 속 제국의 수명은 묘한 반복의 주기를 가진다. 초기 100여 년은 탄생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시기다. 그 다음 100여 년은 새로운 문물을 흡수하며 영토를 확장하는 역동적인 성장기다. 그리고 그다음 100여 년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주변국에 힘을 과시하는 전성기다. 하지만 무리한 패권 과시가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제국은 급격한 노년기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 실패의 책임은 안으로 돌아온다. 내부 권력투쟁이 극심해지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가장
바람개비를 움직이는 건 무슨 바람일까?봄의 샛바람, 높새바람, 여름의 마파람(맞바람), 가을의 하늬바람, 갈바람, 겨울의 뒤바람, 삭풍 등 이름이 많기도 하다. 그 외에도 산들바람, 솔바람, 한들 바람, 실바람, 남실바람, 된바람, 센바람 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들이 색색으로 다양하다.또 바람의 세기에 따라 나무가 뿌리째 뽑힌다는 노대바람, 건물이 부서지는 왕바람, 매우 파괴적인 싹쓸바람 등 여태 몰랐던 재미있는 이름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바람개비를 강릉지방에서는 팔랑개비라고 부른다는데, 팔랑이나 살랑바람이란 이름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바람은 자기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이 말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성경에 나오는 말인데 뒤의 내용보다 그저 이 구절이 좋았다. 살면서 생겨나는 실망감이나 별수 없이 포기해야 할 때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도 할 수 없을 때 이 말에서 이상하게 위안받았다.바람이 분다. 참 제멋대로 분다.귓가를 간지럽히며 살며시 불어대는 기분 좋은 바람에서부터
동네 일꾼들을 내 손으로 뽑는 지방선거가 처음 시작된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출발로 의미가 컸다. 첫 지방선거 때부터 선거 공보물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 아래 모든 유권자 가정에 배달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조직·자금력에 따른 후보자별 홍보 격차를 줄이고 무분별한 벽보와 유인물 살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도 선거 공보물 배달은 여전하다. 올해 지방자치단체·재보궐선거에서 총 7770명이 입후보해 관련 홍보물이 담긴 2400만 개 봉투가 각 가정에 배달됐다. 시도지사·군수·구청장, 광역·기초의원, 비례대표, 교육감은 물론 재보궐선거까지 겹치면서 유권자 한 사람이 받아 보는 공보물이 수십 쪽에 달한다.■하지만 알맹이는 보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공보물이 허다하다. 공보물이 너무 두꺼워 우편함에 넣지 못해 현관 바닥에 나뒹굴기도 한다. 후보 간 비교는커녕 훑어보기조차 벅찬 ‘공보물 공포증’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