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 째, 한국 여행을 하며 내가 만났던 이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실물로는 처음 뵈었던 동료 응용언어학자 K님은 교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교육 철학과 현실의 괴리에서 느끼게 되는 불편함과 학생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어떻게 다루며 살고 있는지 알려주셨다. 친구의 지인들이었던 K와 L언니들,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 H가 가르쳐준 나를 잃지 않고 일 하는 법은, 지쳐있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J가 들려준 예전 재개발 철거 시위 운동을 하며 배운 것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나는 공통된 무언가를 생각했다--희망, 그리고 희망을 품는 노동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는 미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나를 튼튼히 지탱하고 있다. 그 중에 오늘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은 대한성공회의 카탈리나 신부님이다. 카탈리나
요즈음 여성들이 툭 하면 성적 희롱을 당했다며 고소하는 것이 다반사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그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말을 해도 요즈음에는 고소를 당하는 일도 많다.당시 여자들이 명동을 거닐다가 희롱한다는 일본말로 ‘히야까시’를 당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와서 ‘내가 그리고 못 생겼나’하고 눈물을 흘렸으나 이제는 고소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꽤나 많이 변한 것 같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휴. 어쩌면 나는 다행이었어.’란 생각이 들며 가벼운 미소가 지어진다. 좀 오래 되었지만 객기를 부리던 시절 한 식당 여직원에게 농담을 한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소위 글쟁이로 소설을 썼다고 할까? 그날 식당 주문을 받으려고 온 웨이트리스에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이봐요. 내가 좀 심각한 이야기를 할 터이니 잘 들어봐요. 내 아버지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요. 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간다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연락선을 타려고
우리는 지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첨단 기술 문명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현생인류의 출현이 약 20만년 전이고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들어간 시기는 대략 6,000년 전이다.그런데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는 이제 겨우 200여년 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과학 기술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18세기 중후반 증기기관, 기계화, 대량생산 구축, 도시형성이 시작된 1차 산업혁명, 20세기 중반까지 2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현재 우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문명의 이기들이 발명되었다. 전기발명 및 석유산업으로 인한 라디오, TV, 자동차, 냉장고, 에어컨, 전화, 카메라, 화장품, 합성섬유 등 삶의 질을 한껏 높여준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위성, 네비게이션 등 20세기 중후반 싹트기 시작한 3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삶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데 지금부터 시작되는 4차 첨단 산업은 신인류라는 말이 나올
21세기 미국에 낙태 열풍이 몰아쳤다. 20세기에 다 정리된 줄 알았던 낙태권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근 50년 전인 1973년 연방대법은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며 낙태권을 인정했다. 여성의 평등권 확립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이 판례를 지난 24일 연방대법이 뒤집었다. 낙태는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라고 판시하며 낙태에 관한 법적결정은 각 주 정부와 의회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낙태는 모든 사람의 피부에 와 닿는 사안은 아니다. 남성에게 낙태는 ‘물고기와 자전거 사이’만큼이나 멀고, 여성이라도 가임기가 지나면 둔감해진다. 자신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사안을 선의나 이념 등 머리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백인남성들이 세운 이 나라에서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소수계가 동등한 권리를 얻는데 수백년의 피나는 투쟁이 필요했던 배경이다. 연방대법관들이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여성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지는 의문이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 50주년을 맞이한다. 성명의 골자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여기에 더하여 상호 중상, 비방, 무력도발 금지, 남북한 간 제반 교류의 실시, 적십자회담 협조, 남북 직통 전화개설,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공동성명은 남북 분단 당시부터 통일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어느 한 구절 토씨 하나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완전무결한 명문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이 공동성명의 정신과 의의는 잊혀져가고 무슨 ‘선언’이니 ‘결의문’이니 따위들이 소란스럽다. 무슨 말인가. 남북이 각각의 이해관계로 통일의 정도를 벗어나 계속 엇박자 충돌을 거듭해왔다는 소리이다